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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우정·이하원 기자의 특파원 생활기
이름 관리자
날짜 2011/01/25 14:20:21 조회 1995
 

조선일보 도쿄특파원 선우정 기자(이하 선우)와 워싱턴특파원 이하원 기자(이하 이)가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귀국했습니다. 각각 5년6개월, 3년 8개월을 타국에서 보내고 돌아온 두 기자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익숙하지만 낯선 서울


이: 사람들 옷차림이 많이 달라져서 옷을 작게 입는 것 같다고 느꼈다. 내 옷이 구닥다리처럼 보였다.


선우: 서울에서 운전을 해보니 차도가 굉장히 넓게 느껴졌다. 일본 차도가 좁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에서는 운전을 하는데 간단하게 면허증을 교부받았다(우리나라와 일본은 제네바 도로교통협약에 가입되어 있어 간단한 절차만 거치면 자국 면허로 운전을 할 수 있다).

이: 서울로 돌아오자 마자 아이에게 차조심 교육부터 했다. 서울에서는 사람보다 자동차가 우선이니 횡단보도에서도 차가 멈추는지 꼭 확인하고 길을 건너라고 가르쳤다. 집 앞 일방통행로에서 버젓이 역주행을 하는 차들을 자주 본다. 한 손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다른 한 손으로 핸들을 잡고 역주행을 하는데 선진국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선우: 이런 얘기를 들으면 우리나라가 선진국 반열에 들 수 있는지 의심스럽다. 국민소득 2만불의 한계랄까. 예컨대 귀국해 이삿짐센터에 제출할 출입국 증명서를 출입국 관리소에서 발급받을 때 가족 3명에 대해 본인확인을 거쳐야 하는데 밖에 있다고 했더니 ‘그럼 됐다’며 얼렁뚱땅 넘어가더라. 일본에서는 절대 이런 융통성이 통하지 않는다. 이번에 들어간 전세집에 전 세입자가 못을 10개 넘게 박아 사용한 것을 알고 놀랐다. 일본은 주인이 이사하는 집에 대한 두툼한 매뉴얼을 주면서 반드시 매뉴얼대로 집을 사용하도록 한다.


이: 올해 중학교에 진학하는 아이의 교육문제도 많이 신경쓰인다. 한국어 어휘가 조금 부족해보여 입학하기 전에 단편소설을 읽게 하고 있는데 ‘내외하다’ 같은 어휘가 등장하니까 어렵게 느끼는 모양이다. 또 한국학교는 수업시간에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발표하고 질문하는 미국학교와 다르니까 한국에서는 수업시간에 질문하는것을 자제하라고 코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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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바꾸자


이: 미국에 처음 부임했을 때 아이폰이 젊은층 위주로 퍼지고 있었다. 우리나라는 스마트폰 도입은 미국보다 느렸지만 커피숍 같은 공간에서 손님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들고 뭔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조금 충격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대부분 신문이나 잡지를 읽고 있는데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스마트폰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한국 독자의 추세에 맞추기 위해 기사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예측하는 것도 상당히 고민해야 할 부분으로 여겨졌다.


선우: 일본은 와이파이망이 초기에는 무료였다가 유료로 전환됐다. 사용자만 비용을 내고 사용하는게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IT관련 기사도 많지 않은 편인데 요즘 우리 신문에는 IT 관련 기사가 엄청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비교적 전문용어에 해당하는 단어를 그대로 쓰기 때문에(아는 사람은 다 아니까) 기자인 나조차 이해하기 힘들 때가 있다. 지면에 한계가 있는데 기사를 쓸 때 이런 어려운 용어를 어디까지 풀어써줘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이: 오프라인 신문기사를 그대로 다른 디바이스에 옮기는 트렌드가 전반적으로 변화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스트레이트 기사는 중요부분만 보고 넘기는 경향이 있는데, 사안에 대해 명확히 이해를 하는 전문가들이 객관적인 상황을 주관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는 기사가 많아져야 하지 않을까. 독자들이 받아들이기에도 기자의 입장이나 주장이 들어가는 기사가 읽기 쉬울 것 같다. 새로운 플랫폼에 맞게 스트레이트 기사와 오피니언 기사에 대한 지면의 구분도 과감히 바뀌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선우: 조선닷컴 일어 서비스가 일본 뉴스사이트 중에서 항상 4-5위를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많은 편인데 스트레이트 뉴스보다는 사설, 논평, 칼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인 것도 그런 트렌드를 뒷받침한다고 할 수 있다. 독자들은 우리의 ‘시각’을 알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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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에서 느낀 조선일보의 힘


이: 우리 기사가 외국에서 큰 영향력이 있다는 것을 후배기자들이 알았으면 한다. 특파원 생활 중 워싱턴에서 작성한 기사가 일본 뉴스사이트에서 며칠간 상위에 랭크되었던 적이 있었다. 주미 일본대사가 했던 말 중에서 귀감이 될만한 내용이라 생각되는 것을 정리해서 기사로 썼던 것인데, 일본어로 번역된 것이다. 워싱턴에서 나를 알아보고 조선일보 애독자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사람도 있었다. 현재 본지 기사가 중국어, 영어, 일어로 번역 서비스되는데 우리가 쓰는 기사 하나 하나가 영향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후배들이 책임감 있게 기사를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조선일보의 입장과 관심사를 비중있게 생각하고, 기사를 연구하는 클럽도 있다.


선우: 2년전 특파원 생활을 하는 동안 ‘일본, 일본인, 일본의 힘’이라는 저서를 냈다. 당시 설 연휴기간동안 초판 4000부가 다 팔렸다. 조선일보 기자가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계기였다. 우리는 매일 200만부가 넘는 우리 신문을 독자들에게 자기 이름을 걸고 뿌리고 있기 때문이다. 특파원 시절 ‘특파원칼럼’을 줄기차게 써댄 것도 그런 이유였다.


이: 특파원 생활동안 큰 이슈 두 가지를 처리한 것이 개인적으로는 고마운 경험이다. 미국 건국후 최초의 흑인대통령이 탄생하고 대공황 이후 가장 큰 경제위기가 닥쳤는데 이걸 다 취재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는 등 외교안보 기사 역시 유난히 많았다. 외국특파원에게는 미국 주류사회에 대한 진입장벽이 높아 좌절과 아쉬움도 많았지만 1년 넘게 공을 들여 성사된 오바마 대통령 인터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취재였다. G20을 앞두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취재경쟁이 굉장히 치열할 때였는데 동행취재했던 다른 신문사들을 제치고 홀로 인터뷰를 성사시켰다. 후에 이메일을 주고받던 한 유력인사가 나를 추천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선우: 일본내의 경제 산업분야 거의 모든 곳에서 조선일보를 알고 영향력도 있는 편이라 일본에서 취재를 하는데 어려움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특파원 생활을 마치고 본사에서 후배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조선일보 맨파워가 상당하다는 생각을 항상한다. 회사가 새롭게 시작하는 방송사업도 물론 많은 경험이 축적되어야 하겠지만 사원 각자가 맡은 부분에 대해 조금씩만 경쟁력을 확보하고 훈련을 철저히 한다면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고 본다. 일본에 거주하는 미국 기자들이나 일본 기자들과 비교해도 조선일보 기자가 최상급이라고 생각한다.


이: 워싱턴에 가기 전 기사와 관련이 없더라도 세미나를 많이 찾아다니며 배우라고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됐다. 미국 사회 싱크탱크의 집산지인 워싱턴에서는 거의 매일 세미나를 참석하면서 저명인사들의 강연을 찾아다녔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작은 커넥션이라도 만들어 놓는 것이 회사의 자산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특파원 생활을 하는 동안 믿어주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회사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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